주적은 어디까지나 북조선의 인민 무력이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우는 약간 다른데, 북조선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철수하지 않고 남아있던 주한미군을 남한에 대한 미국의 침략으로 간주, 북조선 인민 무력의 명분상 주적은 미군이었다. 현대 대표적인 시각은 네 가지가 있다.
한국전쟁의 논쟁이 따라 나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궁극적 전쟁의 원인을 살핀다음 전쟁의 원인을 국가를 중심으로 파악하여 교전당사국인 한국, 북한, 미국, 소련으로 분류하고 각 당사국에 귀속될 수 있는 원인들을 설정해 보고자 한다.
II. 냉전의 기원에 관한 두개의 시각 : 전통주의학파와 수정
주의적 견해로, 이 견해의 근거는 북한이 먼저 전쟁을 도발했다는 사실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한국전의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 혹은 그 배후세력인 소련, 즉 공산주의 진영에 있다. 미국과 미국이 지배하고 있던 유엔이 1950년 한국전 발발 당시부터 현재까지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는 전통주의적 시각은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단정한 것도 그러한 평가기준에 따른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단지 유엔 결의 없는 이라크전쟁 수행 때문에 북한이 미국을 비방하듯이 일부 진보주의 성향 식자들이 미국을 '악의 상징으로 보는 선입관은 위험한 사고방식인 것이다.
평화교란자
북한의 침략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는 남한 지배층은 남북한 간의 적대를 완전히 끝장내고 평화질서를 구축하는 데 기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긴장과 전쟁 분위기를 지속시키려 해 온 미국 냉전체제의 충실한 하수인이었다. 그 전쟁이 강대국 헤게모니를 강화시킨다는 역설적 측면을 본 시각들은 위
북한에 의해 침몰되었다는 가정이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동인이 되었다는 점, 그러한 인식이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과 한•미 연합훈련 실시의 바탕이 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가정자체가 중국과 북한의 관계구축에 미묘한 조짐을 가져왔다는 점 등 실제적으로 북한이
북한의 전쟁 도발을 억제 할 수 있는 군사력을 구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한미 연합 전력을 필요로 하며 한미 연합 방위 체제를 효과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합사가 작전통제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현 단계에서 한국측이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원을 요구할 경우 미국은 주
미국이 세계 최 강대 군사국으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는 사실, 한국전쟁에 의해 만들어진 동맹이 오늘날까지 유지, 강화되었고, 공산진영은 균열의 조짐을 보였다. 그리고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소간의 냉전관계가 심화되었다. 또한 서방의 선진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하는 추세를 보이게 된다. 한국
북한의 작전계획에 대한 보고(1950. 6. 15)> 김인걸 외 편저, 『한국현대사 강의』, 돌베개, 1998, 130쪽.
전쟁 개시후 미리 소련의 지원을 받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던 북한군은 순조롭게 남하했다. 사단급 작전은 소련고문관들의 참가하에 수행되었으며 작전은 25일 4시 40분에 시작되었다. 공격 첫
한국에서의 공산침략이 저지되지 않는다면 스탈린의 침략이 다른 곳으로 확대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⑤ 다섯째, 무력 시위설이다. 중국 대륙의 공산화에 이어 북한의 남침으로 손쉽게 남한의 공산화에 성공한다는 것은 미국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소련의 무력을 과시할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